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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작성자 이재형 작성일 2008-10-24 19:12:42 조회 3047
이메일 duriint@hanmail.net
 
어머니와 함께 10개월을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는 일이었다. 세상과 첫 만남의 순간이 너무 기뻐서 울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고생할 생각을 하니 서러워서 울었는지, 엄마의 고통이 안쓰러워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는 자라서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20살 생일도 지나지 않은 나이에 하사관으로 입대를 하였다. 용산역 광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논산행 완행열차를 탔고, 새벽에 도착하여 여인숙 비좁은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논산 훈련소 정문을 들어갔다.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주변만 두리번거렸고, 신발이 몇 번 바뀌고, 서로 돌려놓은 시계바늘은 1시간에 두 명의 불침번을 서게 했다. 그리고 받아든 군복을 입고서 누런 종이에 입고 간 옷을 싸서 집주소를 쓸 때에서야 이제 군인의 길을 간다는 실감이 났다.
한밤중에 키보다 조금 작은 더블 백을 메고 여산의 하사관 학교로 걸어가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에 도착하여 얻어터지고 구르면서도 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내무반에 들어가서야 군인임을 알게 되었다.
6시에 기상하면 애국가를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구보를 할 때는 쉬지 않고 번호를 붙이고 군가를 시키는 구대장이 미웠지만 10주째가 되어서야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8키로 완전군장 구보측정을 위한 훈련이었다. 열심히 큰소리로 부른 군가덕분에 어렵지 않게 합격을 한 것이다.

1주일 전에 49번째 생일 미역국을 먹었는데 오늘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고,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다리와 튼튼한 폐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49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모자에 달려있던 단풍하사의 붉은 갈매기가 노란색으로 바뀌었을 때의 기쁨. 만 21살에 중사를 달고서 진급신고를 했을 때의 기쁨. 첫 딸을 낳았을 때의 기쁨. 전역신고를 하면서 사회로 나간다는 기쁨 등등.

7개월 전 첫 10킬로를 시작으로 매월 한 번씩은 하프코스를 달리면서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에 ‘나는 하프가 딱 맞아.’ 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했다. 9월 7일 대회에서 왼쪽 발바닥과 무릎의 통증으로 하프를 겨우 마쳤고 이후로 훈련에 참석을 못하였다. 조금 추스르고 10월 3일에 하프를 한 번 더 달렸는데 역시 발바닥의 통증으로 엄청 고생을 하였다. 17킬로부터 아려오는 아픔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정말 억지로 마쳤다.
통증이 조금은 가셨기에 화요일 인터벌 훈련을 소화 하고 목요일 훈련은 건너뛰었다. 금요일의 과음으로 토요일은 하루 종일 빌빌거리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 덕분에 일요일 아침은 충분한 잠을 자서 몸이 가볍다. 현장에 들러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서 파주 행 셔틀 버스를 탔다.
왼쪽 발바닥만 도와준다면 완주를 할 것만 같다. 만약 발바닥이 아파오면 장거리 주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9월 1달간 훈련을 못하였기에 완주보다는 35킬로까지 뛴다는 계획을 잡고서 출발을 하였다.
예쁜 여자를 처음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여자가 되지도 않을 텐데 얼굴이 빨개지고 힐끗 쳐다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죄지은 것 마냥 낯 뜨거워진다. 출발선에 서 있는 순간 풀코스라는 아주 예쁜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내가 정말 풀코스를 뛰려고 서 있는 것인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였다. 아무 생각이 없다. 겁만 날 뿐이다. 달리기 전에 항상 느끼는 공포가 몰려온다.
총성과 함께 달려 나가는 선두 주자들을 따라서 천천히 달려 나간다. 통일대교 바리케이드가 낯설지 않다. 자유로의 코스모스는 가을 햇살에 타버렸다. 임진강 물은 아래로 흘러가고 파랗던 들녘은 누렇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가을걷이에 힘든 줄 모르는 농부의 모습은 여유롭기 까지 하다. 철조망이 쳐진 자유 로를 돌아 나와 통일로로 접어들었다. 하프를 뛸 때는 숨이 찼는데 지금은 호흡이 편하다. 1킬로를 지날 때마다 점점 출발지점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니 도착지 까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길가에서 파이팅을 외쳐주는 여학생들과 손을 부딪치며 힘들다는 생각을 지우려 한다. 머릿속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픔도 지우고 힘듦도 지우고. 20킬로를 지나면서 ‘이제 하프를 지나는 구나.’ 이제 다시 시작이다. 힘을 내자.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는 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반갑다. 아주 반갑다.
25킬로에서 간식을 먹었는데 아직 발바닥의 통증은 없다. 다행이다. 잠깐 사이에 페메가 출발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혼자이다. 언덕을 넘어 2차 반환점을 도니 서서히 발바닥이 아파온다. ‘포기할까?’ ‘아니야, 첫 도전인데 완주하자.’ 마음을 다져먹고 달렸다. 발바닥이 아려온다. 급수지점에서 급수를 하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잠깐씩 서서 통증을 달래가며 마지막 언덕을 넘었다. 꿀물을 받아 마시고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간 30분이 넘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너무 아프다. 물집도 잡힌 것 같다. 가물가물 4시간 페메의 풍선이 보인다. 그리고 40킬로 팻말이 보인다. 아! 이제 2킬로다. 발바닥의 아픔이 더 심해진다. 눈물이 난다.
아침에 출발했던 곳이 보인다. 토마스 대장의 “보폭 짧게, 짧게, 그리고 쭉 달려요!”
마지막 힘을 다 쏟아서 달렸다. 결승 테이프는 없지만 발바닥의 통증과 함께 ‘삑’ 소리가 나니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 다 이루었도다.”
풀코스라는 여인을 안았다.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여인을 안았다. 쓰라린 아픔과 고통을 안고서 차지한 여인이기에 잊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4:00. 25. 나의 첫 풀코스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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