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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작성자 허정회 작성일 2015-10-11 06:51:03 조회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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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통일대교 건너기 직전이니 한 29km 지점 쯤 왔을 때다. 어느 마라톤동호회 한 여성회원이 내게 콜라를 건넨다. 이때쯤 가장 간절하게 마시고 싶은 게 콜라다. 2주 전 가평마라톤대회 때에는 염치불구하고 자원봉사하고 있던 학생에게 한 병 사달라고 부탁해 마실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오늘은 비상금을 챙겼다. 바로 그 콜라를 마시라고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워낙 힘들어 보였던 것이다.

두 잔을 연거푸 들이킨 후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려고 하는데 아까 그 자원봉사 여성이 외친다. “그런데, 꼴찌인 모양이네요! 뒤에 앰블런스가 있는 걸 보니!” 뒤돌아보니 정말 바로 뒤에 앰블런스가 서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꼴찌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힘내세요! 용기 잃지 마세요!” 고마운 응원의 함성을 뒤로한 채 한 발 한 발 무겁게 내딛는다.

“아니 그럼, 아까 내 뒤에 있던 그 많던 선수들은 …” 나도 20km부터 힘들기 시작해 달리다 걷다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추월했던 선수는 고작 네다섯 명뿐이었다. 모두 다 포기했던 것이다. 내가 꼴찌라는 걸 알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래서는 안 돼지!”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몸이 가평대회 때보다는 가볍다는 게 큰 위안이다. 시간이 문제지 완주는 자신 있었다. 내 바로 옆으로 경찰 오토바이 한 대가 바짝 따라 붙는다. “웬만하면 차에 타시지요?” “네,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미안합니다.” 사이드카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달리니 어느덧 남북출입사무소 입구인 35km를 지나고 있었다. 평소 TV로만 보던 도라산역이 지척이다. 개성공단이 바로 저 건너편이란다. 추수를 앞둔 황금들판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거린다. 공기가 더할 수 없이 맛있다.

내가 멀리서 나타나면 급수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나 좀 빨리 달린다. “너무 멋있어요!” 물 한 컵을 얻어 마신 후 나도 그들에게 고맙다며 화답한다. 대회 관계자 차량과 그 뒤에 앰블런스는 한심한 내 달리기 속도에 맞춰 바짝 따라오고 있다. 그들도 이제는 내게 더 이상 탑승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걷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 할 말은 없는 것이다.

반환점 지나 한 두 선수가 내 뒤에 쳐졌지만 그들도 이내 앰블런스에 실렸다. 사이드카 순경이 내게 말한다. “선생님한테 잡히기만 하면 포기하네요!” 하기야 그들에게는 나 같은 사람이 제일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꼴찌가 포기해 회송차에 타야 업무가 빨리 종료되는데 이렇게 끈질기면 자꾸 시간만 지체되기 때문이다.

마라톤 완주 94회째 만에 공식적인 최종 주자가 됐다. 1등도 힘들겠지만 그만큼 하기 어려운 게 꼴찌다.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참가자가 많으면 하기 쉽지 않다. 오늘처럼 약 300여 명이 달리는 소규모여야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해야 한다. 오늘 코스가 은근히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는 게 한 원인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꼴찌로 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대회전에는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비록 꼴찌였지만 완주하고 나니 이처럼 홀가분할 수 없다. 꼴찌는 역으로 말하면 ‘포기 안 한 첫째’인 셈이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자신과 싸워 이긴 내가 자랑스럽다. 한 후배는 “화려한 완주 하셨네요! 축하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다. 화려했다. 무려 13km 이상을 경찰차와 앰블런스의 에스코트를 받고 달리면서 이제까지의 어느 대회보다 많은 성원과 박수를 받았다. 임진각에 마련된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뒤 따라오던 앰블런스 간호사가 내게 축하의 박수와 함께 악수를 청한다. 5시간 29분 33초 만에 그 화려한 막은 내렸다. 물품보관소에 덩그러니 하나 남아있는 내 배낭을 지키던 대회 관계자도 내게 큰 박수를 보낸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인 것이다. (평화통일마라톤, 201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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